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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영화 [내사랑내곁에]를 봤다. 김명민의 20KG 이상 감량이라는 지독한 연기 투혼에 개봉 전 부터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좋아 하는 김명민, 하지원 주연이란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기다렸고 말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결론 부터 말 하자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다. 영화에 평은 분분하나, 저마다 관점이 있는 것이라 옳다 아니다로 말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본 '내사랑내곁에'를 말 한다면 이 영화는 인간의 '욕심'이라고 말 하고 싶다. 만남. 김명민은 스스로 이미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죽은 사람을 염 해 주는 하지원에게 주파수?를 던진다. 개인적으로 김명민 같은 남자가 추파를 던지면 나도 넘어가고 싶은데, 우리의 이쁜 지원낭도 넘어 갔다. ㅋ 사랑. 사랑에 눈이 멀면 보이는것이라곤, 희망과 선택받았다는 특별함. 그런게 아닐까 한다. 이 둘은 눈 앞에 보이는 죽음 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고 열심히 사랑하기 위해 마음껏 즐긴다. 그리고 행복하다. 현실. 사랑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건 현실을 직시하고, 깨닫는게 아닐까 한다. 점점 말라가며 마비가 되어 가는 김명민은 죽음이란 선과 살고 싶은 욕망의 가운데서 고통스러워 한다. 하지원 또한 김명민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인생도 직시한다. 현실은 냉혹 하고 명확한 선택을 하라고 자꾸만 재촉한다. 그건 바로 그 누구도 아닌 자기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이고 판단이다. 이별. 사람이 간사해서가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나약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또 반대로 생각 하면, 고통받는 정신과 육체를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의 혼돈이 결국 이별을 선택하게 하는게 아닐까 한다. 이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순간이다. 이별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이별 자체가 고통 스럽다면 이는 이별하지 않으면 되는거고,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빨리 인정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별을 고통스러워 한다. 재회. 결국 두 사람은 다시 재회를 한다. 이제는 아픔도 고통도 다 넘겼기에, 서로에 대해서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하려고 하나, 시간은 생명은 그렇게 두지 않는다. 갈 사람은 가야 한다고 재촉 하는 것이 결국 이 둘에게는 막을 수 없는 재앙이고 어둠이다. 그래서 더 발버둥 치고 싶어 하고 말이다. 고통. 몸은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빌어먹을 다 듣고, 다 느끼고, 다 보고 어쩌란 말인가. 몇 시간만 불편한 잠을 자도 온 몸이 뒤틀리는데, 그 고통을 말 하지 못 하고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니, 피부의 감촉이 모두 살아서 아픔을 느끼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이제는 나를 지켜 주는 여인 보다는 내가 고통을 끝내고 싶다. 그러니 제발 자기를 붙잡고 있는 여인에게 호소한다. 제발 이제 좀 보내 달라고 끝내 달라고, 그게 자기를 도와 주는 거라고,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남자의 절규는 그저 침묵일 뿐이다. 욕심. 남자는 죽고 싶어 한다. 아주 간절히, 여자는 아주 간절히 살리고 싶어 한다. 아니, 살린다기 보다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미련이라도 없으니까. 미련? 그래 미련이 맞는것 같다. 산사람은 미련도 후회도 남기고 싶지않다. 죽어라 조금만 더 살라고 외치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죽어라 말한다. 제발 보내 달라고, 그러나 여전히 둘은 대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갑갑하고 죽을 맛이다. 죽음. 죽음으로 남자가 얻는 것은 고통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죽음으로 여자가 가진 것은 고통이다. 눈물 흘리고 절규하고 발악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살아 달라고 몸부림 처도 그건 살아 있는 사람의 욕심일 뿐이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평안 하다. 그래서 산 사람이 운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죽은 사람에 대한 미련과 고통 때문에. 왜 이 영화의 주제를 욕심으로 봤냐면, 정말로 김명민이 자신의 고통 보다고, 1분 1초라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하지원을 위해서 정신적 고통과 치열한 싸움을 했다면, 저 남자의 고통에 보는 사람이 더 힘들었을 텐데, 누구나 공감하는 고통에 죽여달라 호소하는데 누군들 그가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외면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써 죽어가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잡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을 누군들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살아 있는 사람도, 죽어가는 사람도 결국 한 순간에는 자기 자신만을 보게 되게 되는 냉혹한 자아라고 생각 한다. 그 자아를 욕심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내겐 사람은 최후의 순간에는 욕심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모두가 그러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글은 길게 썼는데, 표현이 어느만큼 되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내사랑내곁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니고, 그저 동전의 양면 처럼 그렇게 굴러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저 씁쓸 했다. 죽음이 슬픈게 아니라,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인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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